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북벌 실패 요인은?

제갈량은 여러 번 북벌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갈량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당시 상황적인 영향도 있기 때문에 깊게 파고들어서 보면 북벌을 성공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제갈량이 북벌을 실패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우선을-든-제갈량


제갈량이 있던 촉나라는 위나라와 오나라에 비해서 되게 작은 약소국이었습니다. 국경을 포함한 땅은 넓었을지 몰라도 험악한 산지로 둘러싸인 지형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땅은 되게 좁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도 적고 농업 양도 적었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갈수록 촉나라한테는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갈량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해봤자 사실 크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촉나라의 특성상 인재도 되게 부족했었는데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오나라에 대패한 이후 촉의 장수들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고 이것은 제갈량이 북벌을 시행하는데 크게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여러 명의 장수들이 같이 힘을 합쳐 계략을 짜내야 하는데 촉의 경우 인재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제갈량 혼자서 맡아서 진행해야 했고 이런 점으로 인해서 실제로 제갈량은 잠을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심각하게 과로를 하게 됩니다.

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고 인재도 적은 점만 해도 사실상 북벌을 하기 어려운데 험난한 촉의 지형상 물자랑 군사를 이동시킬 때에도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촉으로 이동하는 지형은 다른 지형보다 험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은 북벌을 하는 제갈량의 입장에서 여간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형이라도 이동하기 좋은 평지로 되어있었으면 군량 보급이나 군사 지원을 할 때 좋을 수 있는데 제갈량의 입장에서 그런 좋은 상황은 사실 빠른 시일 내에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점들로만 보아도 사실상 북벌을 시행하기 힘든데 정말 큰 문제는 위나라에 명장 사마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촉이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위나라에 뛰어난 지휘관이 없었더라면 북벌 성공 가능성이 있었지만 명장 사마의의 빠른 눈치로 인해서 수비 위주의 전술이 펼쳐지고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서 결국 제갈량이 죽고 북벌은 실패하게 됩니다.

제갈량 사후에는 사실상 촉에 뛰어난 인재가 더 이상 남지 않게 되고 이제 촉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서 삼국지의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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